논평의 윤리 잡담

어떤 대상에 대해 논평(평론, 비평)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우리는 끊임없이 논평을 하고있다. 회사에서,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각자 나름의 논리와 지식을 기반으로 어떤 대상을 평가하고, 그것을 말이나 글로 옮긴다. 그 대상은 음악, 음식, 미술품, 정치인, 사회단체, 정당, 정책 등 무수히 다양하고, 아마 우리를 둘러싼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들일 것이다.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사회 초년생 때, 그 당시 상사였던 부장님이 이런말을 한적이 있다.
"비평이란건 비겁한거야. 자기가 직접 (글을) 쓰지는 못하면서 남이 쓴 글에 이러쿵저러쿵 비평이나 하고.. 직접 뛰어들어야지." 토씨는 여럿 틀렸겠지만 핵심은 저런 내용이었고, 가끔씩 그 이후로도 저 문장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김부장이 나한테 한 얘기가 무슨 말인지 잘 이해는 된다. 실제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김부장의 표현대로 '비겁한' 태도를 가지고 논평을 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실제로 이 세상엔 정답이 없는 문제가 더 많은것 같다) 본인의 고민이 담긴 의견을 말하지는 못하면서, 남의 의견에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비평(이라쓰고 비난이라 읽음)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까냄으로써 자신이 그 의견을 말한자보다 높은 수준에 올라있다는 것을 뽐내려는듯이.

특히 이런식의 태도는 갑의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서 더 자주 발견된다. 갑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저런 태도를 취할 수있고, 또 저런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더 갑이 된다. 즉, 평론자는 일반적으로 평론대상에 비해, 비교적 우월한 입장에 있게 된다. 환자의 정신상태를 분석하는 의사처럼, 부하직원의 보고서에 빨간줄을 긋는 상사처럼.

따라서 논평이라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논평자와 논평대상의 위상을 갈라놓는.. 폭력성(이라고하면 너무 거창한가?)을 내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부장의 말은 일리가 있다. 다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차피 아예 입을 닫고 살아갈수는 없고, 계속 우리는 무언가를 논평하며 살아갈텐데.. 과연 어떻게 논평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어떤 논평이 좋은 논평인가? 논평을 한다는 것이 어떤 부가가치를 가져오는가? 논평의 윤리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내가 생각한 대답을 두 가지 정도 소개하고자 한다.

(1) 나보다 강한 상대를 논평하라

앞서 말했듯, 논평의 행위는 기본적으로 논평자를 갑으로, 논평대상을 을로 만든다. 좀 오바해서 표현하면 폭력적이다. 그런데 만약 나보다 약한자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면? 그건 최악의 행동이 되어버린다. 반대로 나보다 강한자에게 폭력을 행한다면, 물론 폭력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강자에 대한 폭력이 그나마 좀 나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반 소시민이 국가권력에 대해 논평하는 것을 그릇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나랏님이 하는 일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입에 올릿다고 비난하는 것은 조선시대 또는 군사정권 시대에서나 적합한 일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 회사에서 상사의 어리석은 결정을 부하직원이 지적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런 의견이 더 원활하게 공론화될 수 있도록 권장하는 조직이 진정한 21세기형 기업이 아닐까?

나보다 강한자에 대한 폭력은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한다. 내가 잡아먹힐수도 있다는 각오를 안고 실행하게 된다. 불리한 상황에 있음에도, 그 행위가 옳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악습을 거부하는 것이며, 저항을 통한 자유를 얻고자하는 몸부림이다. (물론 항상 그런것은 아니지만.. 늘 그렇듯 어느정도 일반화하지 않으면 논지 전개가 어려우니 양해바람)

(2) 보편성을 획득하라

위의 (1)번에 비해 실행하기 더 어려운 것이긴하지만, 더 가치가 있는 것임은 분명하다. 논평의 시작은 논평대상에서 출발하지만,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논평이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되게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쓰고있는 이 글이 7년전 김부장이 한 말에서 시작했지만 (즉, 이 글은 기본적으로 김부장이 한말에 대한 논평이다) 그 결론이 "김부장 새끼 지가 멀 안다고."라는 수준에 머물지 않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만약 결론이 저런 수준으로 마무리된다면 그 논평은 논평대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김부장 말대로 비겁한 행위로 끝이다. 그러나 김부장의 말에서 시작한 논평이, 생각지 못했던 또 다른 화두를 던져주거나, 아니면 꽤 그럴듯한 해결책을 제시해주거나, 또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가져다주는 등.. 그 논평 자체로 의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더 이상 그 논평은 비겁한 것이 아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롤랑 바르트의 S/Z는 Sarrazine이라는 소설에 대한 비평이지만, 그 자체로 새로운 방법론과 통찰을 담은 하나의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창작행위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흄에 대한 코멘트를 하면서, 흄의 한계를 짚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놀랍게도 그에 대한 새롭고 의미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무한도전 Q&A편에 유시민이 출연하여, 박명수의 질문에 대해 논평하면서 "질문 그 자체로서 가장 멍청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이고, 그 질문이 멍청한 것이라는 것을 내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가장 좋은 질문이었다"라고 말하는데, 멍청한 질문이다에서 끝나지 않고 그 질문을 한 것에 대한 메타의미(ㅎㅎ;)를 끄집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유시민의 논평은 훌륭하다. 이 예시들의 공통점은 특정한 논평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논평대상에게 갑질을 하기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추상하여 (논평자 자신을 포함한) 이 세계를 반추해보는 작업이 되어야한다.

정리하자면, 김부장의 말에서 출발하여 논평의 윤리에 대해 논하고 있는 바로 이 글처럼, 그냥 좋다 나쁘다라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논평을 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내가 쓴 이 글이 대단한 것이라는.. 고쳐지지 않는 자뻑 말기 증상적인 코멘트와 함께.. 이만 줄인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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